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9. 2. 선고 2021가단5160620
여러 명이 대화하는 자리에서 그 중 한 명이 몰래 대화 내용을 녹음하여 녹취록을 관련 소송에 증거자료로 제출되게 한 것은 다른 대화 참여자의 음성권을 침해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여 위자료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는 하급심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법원은 본건에서 녹음 및 그에 대한 복제, 배포가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향후 재판에서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1. 사안의 개요
-여성가족부 공무원인 E는 2019. 12. 20. 부처 내 비위행위를 신고하였는데(이하 '이 사건 신고'), 그 직후인 2020. 2.경 여성가족부에서 갑질 행위 혐의로 중징계 의결되어 직위해제 조치 되었다(이하 '이 사건 조치').
-원고 A는 공익신고자들의 보호 및 공익신고 활성화를 목적으로 설립된 재단법인 H의 대표자이고, 원고 B은 위 법인의 상임이사인데, 원고들은 E에 대하여 이루어진 여성가족부의 이 사건 조치가 이른바 내부고발자에 대한 불이익조치이므로 이를 중단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2020. 10. 13. 여성가족부장관에게 보냈다.
-이에 여성가족부 공무원인 피고 C, D는 2020. 10. 21. 원고들을 방문하여(이하 '이 사건 방문'), E가 오히려 소속 직원들에게 비인격적인 대우, 부당한 업무 강요 등을 장기간 해 온 사실이 확인되었으므로, 이 사건 조치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불이익조치가 아니라 정당한 징계권 행사 차원에서 필요하였다는 내용의 설명을 하였고, 원고들은 관련 행정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단 지켜볼 수밖에 없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였다.
-피고 C, D는 이 사건 방문에서 원고들과의 대화 내용을 원고들의 동의 없이 녹음하였고(이하 '이 사건 녹음'), 이 사건 녹음에서 녹취한 녹취서가 2021. 4. 6. 관련 행정소송에서 여성가족부측 서증으로 제출되었다.
2. 당사자들의 주장
가. 원고들의 주장
피고들이 이 사건 방문 시 원고들에게 녹음 사실을 고지하지 않고 대화 내용을 녹음하고 이를 녹취서로 작성하여 관련 행정소송에 서증으로 제출한 것은 원고들의 인격권으로서의 음성권을 침해한 것이고, 이로 인하여 E가 원고들이 피고들을 만난 사실을 알게 되어 원고들의 대외적 신뢰가 훼손되었으므로, 피고들은 공동하여 원고들에게 각 20,000,000원의 위자료를 지급하여야 한다.
나. 피고들의 주장
피고 C, D가 이 사건 방문 시 원고들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은 관련 행정소송에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방문 결과 정리에 내부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고, 관련 행정소송의 여성가족부측 소송대리인에게 참고용으로 녹취서를 만들어 제공한 것이 증거로 제출되었는바, 피고들은 즉시 증거신청을 철회하고 녹취서를 회수하였으며, 해당 녹취서의 내용도 원고들의 대외적 신뢰를 훼손할 만한 내용이 아니므로, 피고들의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이다.
3. 법원의 판단
가. 관련 법리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자기 의사에 반하여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녹취, 방송 또는 복제 · 배포되지 아니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인격권에 속하는 권리이다. 또한 헌법 제10조는 헌법 제17조와 함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는데, 이에 따라 개인은 사생활 활동이 타인으로부터 침해되거나 사생활이 함부로 공개되지 아니할 소극적인 권리는 물론, 오늘날 고도로 정보화된 현대사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권리도 가진다.
따라서 동의 없이 상대방의 음성을 녹음하고 이를 재생, 녹취, 복제, 배포하는 행위는 설령 그것이 형사상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상 보장된 음성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여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그러나 한편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 또는 이익이 있고 녹음자의 비밀녹음이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등 행위목적의 정당성, 수단 방법의 보충성과 상당성 등을 참작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는, 녹음자의 비밀녹음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로서 그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일단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평가된 행위가 위법하지 않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사람이 증명하여야 한다.
나. 판단
피고 C, D가 이 사건 방문 시 원고들과의 대화를 원고들의 동의 없이 녹음한 사실, 이 사건 녹음에 기초하여 작성된 녹취서가 관련 행정소송에 서증으로 제출된 사실은 위에서 본 바와 같으므로, 위 법리에 의할 때에, 피고들의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들의 음성권을 침해한 불법행위를 구성한다.
또한 위에서 든 각 증거, 을 제3 내지 6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피고들이 이 사건 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 또는 이익이 정당하고, 녹음 및 그에 대한 복제, 배포가 필요한 범위 내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통념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다고 보기도 어려우므로, 피고들의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은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① 피고들은 이 사건 방문 결과에 대한 내부적 정리에 활용할 목적으로 이 사건 녹음을 하였다고 주장하나, 위 녹음이 녹취서로 작성되어 관련 행정소송 담당자에게 전달되었고 여성가족부측 소송대리인에 의하여 서증으로까지 제출되었으며, 그 제출 시점이 관련 행정소송에 원고들이 작성한 탄원서가 제출된 이후인 점을 고려하면, 결국 이 사건 녹음에 기한 녹취서를 서증으로 제출한 것은 원고들 작성의 탄원서를 탄핵하기 위한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② 피고들은 2021. 1. 28. 관련 행정소송 1회 변론기일 종료 후 소송수행을 담당하고 있는 K이 피고 D에게 연락하여 원고들 재단 관련 자료가 있는지 물었고, 피고 D가 면담 녹음 파일이 있다고 하자 K이 준비서면 작성 시 참고자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녹취서 작성을 부탁하여 피고 D는 공개나 외부 유출이 불가하다는 전제로 녹취서를 작성하여 K에게 전달하였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이후부터는 이 사건 녹음 파일 및 녹취서가 이 사건 방문 결과에 대한 보고서 작성이나 내부적 정리를 넘어서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보이고, K이 녹취서를 소송대리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도 위 녹취서가 소송에 제출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의가 명확히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③ 위와 같은 사정에 비추어 보면, 설령 피고들의 주장대로 녹음 당시에는 이 사건 녹음을 관련 행정소송에 증거로 제출하기 위한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들 또는 피고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은 이후 이 사건 녹음 및 녹취서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거나 제출, 유포되지 않도록 관리하여야 할 책임을 소홀히 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점
④ 여성가족부가 관련 행정소송에 서증으로 제출된 녹취서를 이후 철회하였다고 하더라도 위 녹취서는 9일간 소송기록에 편철되어 있었고, 제출 당일 보조참가인인 E의 소송대리인에게도 송달되어 E가 녹취서의 내용을 인지한 것으로 보이는 점
⑤ 이 사건 녹음 및 녹취서가 관련 행정소송의 당사자들간의 대화를 내용으로 한 것도 아니고, 여성가족부측이 제출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거나 승소를 위하여 제출이 반드시 필요한 서증이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⑥ 원고들은 이른바 내부고발 내지 공익신고자들을 조력하는 사람들로서 E의 이 사건 신고를 공익신고로 보고 E를 도왔던 사람들이므로, 원고들이 피고들을 만나 그들의 주장을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경청하였다는 사정만으로도 E와의 신뢰관계가 훼손되고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바,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가 없다고 할 수 없고 이 사건 방문은 피고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므로 원고들이 그러한 상황을 자초하였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따라서 피고 대한민국은 소속 공무원들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위법하게 원고들에게 입힌 손해를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배상할 책임이 있고, 원고들이 피고들의 행위로 인하여 불쾌감이나 난처한 감정을 느끼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칙상 명백한바, 피고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이 한 행위의 위법성의 정도 및 이 사건과 관련된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위자료의 액수는 각 3,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각 3,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임이 기록상 명백한 2021. 7. 23.부터 피고가 이 사건 이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항쟁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 판결 선고일인 2022. 9. 2.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12%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주 문
1.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들에게 각 3,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21. 7. 23.부터 2022. 9. 2.까지는 연 5%의,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에 의한 돈을 지급하라.
2. 원고들의 피고 대한민국에 대한 나머지 청구 및 피고 C, D에 대한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원고들과 피고 대한민국 사이에 생긴 부분의 4/5는 원고들이, 나머지는 피고 대한민국이 각 부담하고, 원고들과 피고 C, D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들이 부담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법무법인 산지 / 위정현 변호사